역사

라켓볼은 1940년 후반 미국에서 발생되었으며,

이 운동은 1949년과 1959년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어 YMCA 등의 단체에서 이 경기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여 더욱 관심이 증대되면서 1969. 4. 26 국제라켓볼협회를 결성하였습니다.

 

1969년「제 1회 라켓볼 선수권 대회」를 열었으며, 그 후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프랑스, 멕시코 등과 아시아 지역으로는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전세계에 걸쳐 널리 보급 발달되었습니다.

 

라켓볼은 역사가 길지 않은 현대스포츠로서, 시간과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스포츠라는 장점과, 타 실내 스포츠와 비교하여 시간당 운동량이 많다는 특징으로 인하여 최근 그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스포츠의 한 종목입니다.

라켓과 공을 가지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종의 테니스와 비슷하지만, 경기방식이 더 다이나믹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상대방과 같은 홀에 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더욱 재미있고 흥미있는 경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폭 6m, 길이 12m, 높이 6m의 실내코트에서 테니스 라켓보다 짧은 라켓(53cm)으로 하는데 경기는 코트 중앙에 마련된 서비스 지역에서 서비스하면 상대방은 이 공이 바닥 면에 2번 튕기기 전에 맞받아치는 형식으로 치러짐. 서비스 다음 바닥을 제외한 5개의 벽면을 어디를 향해 공을 쳐도 되지만 반드시 1번은 정면 벽을 맞혀야 합니다.

한국발전사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라켓볼이 소개된 것은 1965년 미8군내 트렌트짐에 라켓볼 코트를 만들어친 것이 국내 라켓볼의 시초입니다.

 

그 당시에는 라켓볼보다는 손바닥을 이용한 핸볼을 즐겼으며 그 후 장비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1970년대부터는 라켓볼 경기를 주로 하게되었습니다.

 

라켓볼이 정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서강대학교와 코오롱스포렉스에 코트가 세워지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곧이어 포항공대와 공군사관학교등 여러 학교단체와 사회스포츠센타로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여 1987년에 코오롱스포렉스를 중심으로 동호인 단체가 결성되어 전국 라켓볼 보급화에 많은 공헌을 하게됩니다.

이때에 국내에 첫 공식 대회인 제1회 한국오픈 라켓볼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88년과 1989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일본 오픈대회와 아시아 대회를 참가하여 기술향상은 물론 한일간 친선을 도모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이때부터 라켓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신문과 방송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많은 동호인수가 늘어났으며 테니스 선수들이 라켓볼로 전환하기도 하였습니다.

1990년에는 국내 최초로 라켓볼 책자를 출판하여 라켓볼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고 1990년 6월 7일에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제5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최초로 한병구 선수와 정남환, 김준성 임원이 참가하였고 이때에 정식으로 세계라켓볼연맹(IRF)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1년 6월 서울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한국 아마추어 라켓볼협회 창립식을 갖고 초대 회장에 정남환씨를 선출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많은 국내대회를 개최하여 많은 선수들이 발굴되었고 199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대회에서 한국에서는 최초로 한병구 선수가 화이트 부분에서 금메달과 블루 부문 복식에서 한병구, 조영일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여 한국 라켓볼 실력을 과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1998년 제9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이상수, 조영일 선수가 복식 화이트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장동민, 이희연 선수가 레드부문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 박교준 선수가 화이트 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1995년 12월에는 2000년을 위한 준비라는 기틀아래 한국아마추어라켓볼협회 명칭을 한국라켓볼협회(KRF)로 새롭게 출범시켜 새회장에 홍영상씨를 선출하였습다. 새회장은 국제운영 지식을 도입하여 사회체육에서 학교체육으로 발전시켜 각 대학에 라켓볼을 정식 수업종목으로 채택하게 하는 등 대학가에 활성화를 가져왔습니다.

1997년 8월 1일제10회 아시아 대회를 한국에서 유치하였고 TV를 통하여 중계 방송하는 등 라켓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 후 2002년 제11회 프에르토리코 세계대회에서 2004년 제12회 세계대회 개최지를 한국으로 정하였습니다, 2004년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경기도 안양시에서 개최된 제12회 세계 라켓볼 선수권대회에 전 세계 29개국 155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라켓볼 축제의 장을 더불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를 올리게 되었다. 2006년 3월에는 한국라켓볼협회를 만들었고, 성공적인 대회개최를 통하여 아시아지역 최초의 개최국으로으로 그 위상을 높였으며, 국민들의 라켓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후 2005년 4월에는 서울경제 신문사 주최로 한국오픈 라켓볼 대회를 다시 부활시키면서 국제경쟁력에 다시금 한발 앞서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해 12월에는 멕시코에서 개최된 제17회 세계 주니어대회에 아시아 최초로 임지수(가좌초등6학년)군이12세부, 14세부에 참가하여 12세부 블루 개인전에서 금메달, 14세부 골드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세계 최초 및 아시아 최초의 금메달 입상과 국민생활체육전국라켓볼연합회 통합회장으로 김영선(국회의원)씨가 추대되어 취임하였으며, 8월에는 도미니카공화국(산토도밍고)에서 개최한 제13회 IRF 세계라켓볼 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 선수단을 파견하여 남자(6위), 여자(7위), 종합(6위)의 성과를 달성하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면서 2004세계대회 개최국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과시하게 되었고, 이로서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국가로서 우승권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2007년 1월에는 일본에서 주최한 아시아오픈 라켓볼챔피언쉽에서 개인전 1위를 차지하며, 아시아의 최고임을 다시한번 확인했습니다.

2008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동식 실외코트를 대한라켓볼협회에서 제작하여 서울경제 배 라켓볼챔피언쉽을 일산 라페스타에서 미국프로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세계최초로 대회를 운영했습니다.
또한 2008년 세계라켓볼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가 참가하여 종합 9위의 성적을 올렸으며, 차기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여 2010년 8월 12일~21일까지 강남구에서 본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2009년 대만에서 개최하는 월드게임에 라켓볼 대한민국대표로 이상수, 안정은선수가 예선전을 거쳐
출전권을 획득 및 대회참가 하였으며, 대만에서 열리는 라켓볼대회의 메인코트를 대한라켓볼협회에서 보유하고 있는 세계최초의 이동식 실외코트를 무상대여하여 전 세계적으로 한국라켓볼의 위상을 떨쳤습니다.